강동원 필모 2.5D

[화담준호/전력글] 잔혹한 선물

뢍롸 2016. 1. 2. 12:45

낯이 익구나 저 기운은.

화담은 자신이 착각한 것인가 싶어 고개를 젓다 다시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틀림없었다. 그는 피리와 함께 족자 속으로 들어가버렸던, 5백년전의 전우치가 맞았다. 지루하고 허망한 수백년의 세월, 그 족자의 봉인만이 풀리기를 바라왔던 그로서는 의아하고 혼란스런 일이였다. 분명 족자속에 들어 있어야 할 자가 어째서 환생의 고리를 겪였단 것인가. 다만 자의적으로, 신선들의 봉인술이 완벽하지 못해서였던 탓이라 추측해볼 밖에 없었다. 옛 기억이 모두 지워진채 보잘것 없는 어린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전우치의 현생을 목도하며 허탈해졌다. 피리도 기억 못할 것이겠지. 천관을 죽이고 모두를 속여 얻은 결과가 겨우 이딴식이었단 것에 화담은 절망을 느꼈다. 제 어미와 여동생의 손을 잡고 퍽 다정스레 성당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몹시 평화로워 보여 전생의 그와는 위화감이 들 정도다. 아이의 천진한 웃음에 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허나, 내가 가만히 머물러도 바람은 머잖아 불거란다. 이미 스쳐버린 것이니 날 원망 말거라. 멈춰버렸었던 바람이 다시 분다.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린 팔은 반항하기엔 무력했다. 부적도 도술도 없는 그는 껍데기만 아니, 그 영혼만 전우치일 뿐. 축 늘어져 기절한 소년을 품에 어렵잖게 안아들고 화담은 어둠속 그늘 더 깊은 어딘가로 걸어갔다. 달이 유달리 크고 밝았다. 이제 너도 변하겠구나. 괴이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소년을 뚫어져라 내려봤다. 그림자 없는 달빛이 아이의 낯에 눈부시도록 쏟아졌다. 소년의 작고 여린 아랫 입술을 엄지로 꾹 누르던 그는 기운 없이 무력하던 두 볼을 부여잡아 입술을 포갰다. 요괴의 숨결이 불어넣어지고, 얌전히 감겨만 있던 두 눈이 몽롱한 눈빛을 한채 게슴츠레 떠졌다. 멍하고 흐린 눈동자로 화담을 응시하는 아이에게 세뇌라도 하듯 그는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 날 잊거라. 날 잊고, 네 본 모습도 영영 망각하거라. 내가 널 다시 찾아갈 때까지. 취한 양 초점 잃은 표정으로 끄덕이던 소년은 마치 저 골목 끝에서 누가 절 찾기라도 하는 것마냥 홀려버린 모습으로 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것이 오랜만에 해후한 내 호적수를 위한 선물이란다.

요괴의 기운은 저주를 부른다. 마치 예전의 그처럼. 자신이 요괴가 되어 버린줄도 모르던 가련한 아이에게 들이닥친건 여동생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오백년전의 자신을 닮으려는듯 아이는 도술 대신 로만칼라를 선택했다. 어리석게도.
이제 성스러운 그 옷도 거룩한 성전도 요괴의 피로 더럽혀지리라. 어떤가 전우치. 내 잔혹한 선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