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필모 2.5D
[양검태성/참필전력] 빗속으로
뢍롸
2016. 7. 3. 22:07
창문을 요란스레 노크하는 불청객 덕에 눈을 희번뜩 떠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물기로 세공된 유리구슬이 창가에 한가득 붙어갔다. 시야를 가리는 얄미운 커튼이 날씨 답지 않게 냉기를 슬금슬금 뿜어댔지만, 그보다 더한 끈적하고 답답한 공기가 그럭저럭 장맛비 특유한 생김을 보인다. 주말, 하릴없이 침대위에 대자로 몸을 늘어뜨리곤 뺨을 부벼댔다. 얌전하던 손도 뻗어 이내 이불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손바닥 위로 스치는 감촉은 제 옆에 머물던 이의 살갗마냥 부드럽고 따뜻했다.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시계의 분침이 수백번 움직이고 흐리나마 환했던 풍경도 어느새 완벽히 종막을 맞았다. 무심하게 몇번이고 침대위로 몸을 뒤척여보아도 마음만 지친채 조금도 데워질 생각이 없다.
눈부시게 발치로 굴러 부서지던 수많은 물방울의 산란이 투명하도록 흰빛을 뿜어대던 그 날. 장대비 쏟아지던 그 빗속으로 몸을 밀어넣은채 채 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옮기고 있었다. 이럴때 비싼 구두에 비싼 수트라니. 출근하려면 으레 입어야 하는 갑갑한 규율에 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세차게 쏟아치는 비에 이내 옷 안까지 습기가 차는듯해 몹시 불쾌했다. 오늘따라 검찰청 전용 주차장엔 차들이 많아 결국 근처 어귀 고등학교 주변에 대충 세워두고선 종종걸음으로 길을 되돌아가려는 참이었다. 그때 무언가 사람의 형체가 당돌하게도 내 우산 밑에 찾아왔다. 뭐, 뭐야? 벙찐 표정으로 그 인영의 정체를 뒤늦게 살폈다. 이미 빗줄기에 온 몸이 제법 젖어버린 소년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생긋 웃는다. 상기된 뺨과 입술이 생그럽게 붉은 예쁘장한 남자아이. 고등학생쯤 되려나. 저도 모르게 말을 잊은채 한참이나 그를 바라봤다. 고마워요 아저씨!! 우산도 없고, 마침 살 돈도 없거든요. 소년이 다시 해맑게 미소지었다. 그 웃음은 찬연히 반짝대는 빗방울로 변해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제야 익숙한 교복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너 저기 성권고? 어떻게 알았지?! 신기하단 눈으로 잠깐 멍하니 있던 아이가 뒤늦게 탄성을 질렀다. 교복 보셨구나!!! 바보스럽기도, 천진하기도 해서 굳어있던 내 표정까지 금새 풀렸다. 피식 웃고선 난 나로선 결코 흔치 않은 호의를 베풀었다.
ㅡ 이거 쓰고 가.
ㅡ ....예?!
난 조금만 더 가면 되. 너네 학교는 좀더 멀잖아. 대충 그런 말을 했던거 같다. 아마 실제로는 검찰청이나 성권고나 그곳에서 볼때 거리 차이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어린애니까. 그래서 신경이 쓰이는 걸꺼야. 일단 그 순간은 무턱대고 그리 여겼다. 그가 감사하다며 꾸벅대고 점점 빗속으로 사라져갈때 외친 그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대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꼭 갚으러 찾아올께요!!
우산쓴 사랑이 점점 더 빗속으로 흐려져갔다.